2021고단2651 | 형사 대구지방법원서부지원 | 2022.01.19 | 판결
피고인
차한우(기소), 임영하(공판)
이 사건 공소를 기각한다.
1. 공소사실
피고인은 (차량번호 1 생략) G80 승용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다.
피고인은 2021. 7. 9. 16:40경 위 차량을 운전하여 대구 달서구 월배로 133 여대원한의원 앞 편도 4차로를 1차로(유턴차로)에서 2차로로 진로를 변경하게 되었다.
그곳은 진로변경을 제한하는 안전표지인 백색실선이 설치된 곳이므로 이러한 경우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는 차로를 변경하지 아니하고 안전하게 운전하여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이를 게을리 한 채 1차로(유턴차로)에서 2차로로 백색 실선 구간에서 진로를 변경 한 과실로 마침 같은 방면 2차로를 따라 진행하던 공소외 1(남, 72세) 운전의 (차량번호 2 생략) K5 개인택시가 피고인 차량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정지하게 하였다.
결국 피고인은 위와 같은 업무상과실로 위 개인택시 승객인 피해자 공소외 2(남, 15세)에게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경추의 염좌 및 긴장 등의 상해를 입게 하였다.
2. 판단
이 사건 범죄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1항, 형법 제268조에 해당하는바,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므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4조 제1항에 따라 같은 법 제3조 제2항 단서에 해당하지 않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검사는 진로변경금지 표시인 백색실선을 위반하여 진로를 변경한 것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1호(다음부터 ‘단서 제○호’라고 지칭한다)에 해당한다고 보아 약식명령을 청구하였으나, 백색실선 표지를 위반하여 진로를 변경한 경우는 단서 제1호의 신호위반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단서 제1호는, "「도로교통법」 제5조에 따른 신호기가 표시하는 신호 또는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공무원등의 신호를 위반하거나 통행금지 또는 일시정지를 내용으로 하는 안전표지가 표시하는 지시를 위반하여 운전한 경우"라고 규정하여, ‘제5조의 신호기 또는 경찰공무원의 신호’를 위반하는 경우와는 달리, ‘안전표지’의 경우는 ‘통행금지 또는 일시정지’를 내용으로 하는 안전표지를 위반하는 경우로 명백히 한정하고 있다. 도로교통법 제5조는 ‘교통안전시설이 표시하는 신호 또는 지시에 따를 의무’를 규정하고, 도로교통법 제4조, 동법 시행규칙 제6조, 제8조는 교통안전시설의 종류로 신호기와 안전표지를 규정하고 있으며,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백색실선’은 안전표지 중 5. 노면표시에 해당하는데(시행규칙 제8조 별표 6의 503, 506 해당 그림 및 설명은 별지 참조), 이는 단지 ‘진로변경금지’를 의미하는 안전표지이다.
② 문의적 해석상 ‘통행금지’와 ‘진로변경금지’는 각각 가리키는 의미가 다르다. 도로교통법 제2조 제1호는 ‘도로’를 도로법에 따른 도로, 유료도로법에 따른 유료도로, 농어촌도로 정비법에 따른 농어촌도로 및 ‘그 밖에 현실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또는 차마가 통행할 수 있도록 공개된 장소로서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장소’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도로’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 차 따위가 잘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비교적 넓은 길’이고, ‘길’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이다. 이처럼 ‘도로’는 개념상 어떤 곳과 다른 곳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그리고 일정한 너비를 지닌) 공간이다. 그리고 ‘통행’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길이나 장소를 통해 지나다님’이다. 도로교통법은 ‘통행’의 의미에 대하여 별도로 정의하고 있지 않으나, 도로교통법 각 조항을 보면 위 사전적 의미와 마찬가지로 ‘어떤 도로를 그 진행방향으로 지나감’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개념정의를 종합해 보면, ‘통행금지’는 ‘어떤 도로를 그 진행방향으로 지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아니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한편 도로교통법 제2조 제6호는 ‘차로’를 ‘차마가 한 줄로 도로의 정하여진 부분을 통행하도록 차선으로 구분한 차도의 부분’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같은 조 제7호는 ‘차선’을 ‘차로와 차로를 구분하기 위하여 그 경계지점을 안전표지로 표시한 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로변경금지’란 ‘어떤 도로에서 그 진행방향으로 통행이 허용됨을 전제로, (노면에 백색실선이 그어진) 특정 구간에서는 차로를 변경할 수 없고 차로를 따라 한 줄로 진행하는 방법으로만 통행하여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즉, 백색실선을 위반한 진로변경행위는 ‘통행금지’의 위반이 아니라 ‘통행방법제한’의 위반이다.
③ 만약 백색실선 위반이 단서 제1호의 ‘통행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안전표지’에 포함된다고 해석된다면, 중앙선 침범이 제1호에 포섭됨은 더욱 당연하므로, 애초에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입법 시 단서 제1호 외에 단서 제2호를 별도로 규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④ 도로교통법은 ‘통행금지’와 ‘진로변경금지’를 별도로 규율하고 있다. ‘통행금지’에 대하여, 도로교통법 제6조 제1항은 ‘도로에서의 위험을 방지하고 교통의 안전과 원활한 소통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구간을 정하여 통행을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고, 이를 위반한 행위는 같은 법 제156조 제2호에 의해 처벌된다. 반면 ‘진로변경금지’에 대하여는, 같은 법 제14조 제1항, 제2항, 제5항에서 ‘차마의 교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도로에 차로를 설치’할 수 있고, 차마의 운전자는 차로가 설치된 도로에서는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차로를 따라 통행’하여야 하며, ‘안전표지가 설치되어 특별히 진로 변경이 금지된 곳에서는 차마의 진로를 변경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고, 이를 위반한 행위는 같은 법 제156조 제1호에 의해 처벌된다.
⑤ 1981년 제정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의 제정이유는 "자동차의 운전이 국민생활의 기본요소가 되어가는 현실에 부응하여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 대한 형사처벌 등의 특례를 정함으로써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촉진하고 국민생활의 편익을 증진하려는 것"이다. 이 법은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종합보험에 가입하거나 합의된 경우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기소할 수 없게 하였고(교통사고의 비범죄화), 다만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시속 20km 이상의 속도제한 위반 등 8대 중과실 유형의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규정하였다. 이후 시대상황 및 국민여론의 변화에 따라 ‘보도침범’, ‘승객추락방지의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주의의무’, ‘화물추락방지의무’를 추가하여 현재 12대 중과실로 늘어났다. 단서 각호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입법취지 및 입법연혁을 고려하여야 한다.
⑥ 위와 같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과 도로교통법의 문언해석, 규정체계 및 입법취지에 비추어 볼 때 ‘진로변경금지’는 ‘통행금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명문규정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으므로(대법원 2002. 2. 8. 선고 2001도541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04. 2. 27. 선고 2003도6535 판결 등 참조), ‘통행금지’의 문언의 범위를 넘어 모든 지시위반행위로 확장해석하여서는 아니 된다.
⑦ 나아가 백색실선을 단서 제1호에 포섭하는 것의 적절성을 현실적 측면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차로변경을 금지하는 백색실선은 현재 교량, 터널, 교차로 진입 직전, 횡단보도 직전 등 사고의 위험이 있는 여러 경우에 빈번하고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일반국민들이 백색실선 위반을 12대 중과실 중 하나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고, 처벌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여론의 합의 또는 지지가 존재하는지도 불분명하다. 단서 제1호는 1981년 제정 당시부터 존재하였던 규정임에도 그동안 실무상 수사기관에서 백색실선 위반을 이유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죄로 공소제기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었는데, 최근 2019년경부터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⑧ 백색실선을 위반하여 차로변경을 하는 경우의 사고발생의 위험성, 사고결과의 치명성이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보도 침범 등 다른 12대 중과실의 경우와 같다고 단정할 수 없다. 백색실선이 그어져 있는 곳이라도 해당 도로를 진행 중인 차들은 같은 방향으로 진행 중이므로 옆 차로의 차량이 방향지시등을 켜고 천천히 진로를 변경한다면 충분히 인지하고 안전거리를 유지하여 사고를 피할 수 있다. 백색실선이 진로변경금지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대다수 운전자들이 인식하고 있고 가급적 준수하려고 노력하나, 그렇다고 하여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보도 침범과 같이 다른 운전자가 절대적으로 준수할 것이라고 신뢰하고 이를 전제로 운전하고 있지는 않다. 실선의 길이나 필요성 측면에서 보더라도 모든 백색실선이 동일하게 평가되기 어렵다. 교량, 터널, 특히 고속도로에서의 교량, 터널에서는 해당 구간 전체가 백색실선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경우에는 고속주행 중인 차들이 대피공간이 없는 곳에서 충돌하여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 및 인명피해의 위험이 매우 높으므로 백색실선의 준수 필요성이 높고 사고결과의 치명성 면에서는 중앙선 침범에 준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일반 도로에서 교차로 진입 직전 설치된 백색실선은 길이가 훨씬 짧을뿐더러 백색실선 위반으로 인한 사고발생의 위험성, 사고결과의 치명성이 훨씬 낮다. 실질적으로는 교차로 진입 후 (가상의) 차로를 변경하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음에도 유독 교차로 진입 직전 구간에서의 진로변경행위만 처벌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⑨ 백색실선 위반이 단서 제1호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련한 대법원 판례는 2015. 11. 12. 선고 2015도3107 판결, 2004. 4. 28. 선고 2004도1196 판결, 2019. 12. 12. 선고 2019도14464 판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5도3107 판결은 "교차로 진입 직전에 설치된 백색실선을 교차로에서의 진로변경을 금지하는 내용의 안전표지와 동일하게 볼 수 없으므로, 교차로에서의 진로변경을 금지하는 내용의 안전표지가 개별적으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면 자동차 운전자가 그 교차로에서 진로변경을 시도하다가 교통사고를 야기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1호가 정한 ‘도로교통법 제5조에 따른 통행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안전표지가 표시하는 지시를 위반하여 운전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는바, 반대해석상 백색실선 위반은 단서 제1호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한편 대법원 2004. 4. 28. 선고 2004도1196 판결은 고속도로에서의 백색실선 위반 사안으로서, 백색실선 위반이 ‘통행금지 또는 일시정지를 내용으로 하는 안전표지 위반’에 포함되는지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채 당연히 이에 해당함을 전제로 도로교통법령을 나열한 후 단서 제1호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2019. 12. 12. 선고 2019도14464 판결은 일반도로 교차로 진입 직전 백색실선을 위반한 사안에 대하여 단서 제1호를 적용한 원심을 수긍하였다. 이처럼 현재 대법원 판례가 백색실선 위반을 단서 제1호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고 있다고 생각되기는 하나, 앞서 든 여러 가지 이유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해석에 의문의 여지가 없지는 아니하므로 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며, 나아가 이 사안이 일반 국민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사안임을 고려하여 대법원의 명확한 판단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는 의견을 덧붙인다.
3. 결론
결국 이 사건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1호가 적용된다고 볼 수 없고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므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사건인바,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반하여 무효인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에 따라 이 사건 공소를 기각한다.
[별지 생략]
판사 신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