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다274398 | 민사 대법원 | 2024.12.24 | 판결
원고 1 외 4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오늘 담당변호사 최종갑 외 3인)
○○○씨△△공파□□공 종중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온세 담당변호사 김기문)
수원고법 2024. 7. 25. 선고 2023나21548 판결
원심판결 중 원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에 환송한다. 피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원고들의 상고이유에 관하여
가. 제1 상고이유 부분
1) 사안의 개요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피고는 ○○○씨△△공파□□공을 공동선조로 하여 그 후손인 ◇◇공, ☆☆공, ▽▽공, ◎◎공 등 4개 지파의 종원으로 구성된 종중이고, 원고들은 피고의 종원이다.
나) 피고의 규약에서 정한 종중 대표자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1961년 제정된 규약에서는 ‘종중 대표는 □□공파 직계 종손으로 한다(제2조 제1항).’라고 정하였고, ② 2002. 8. 11. 시행된 규약에서는 ‘종중 회장 등 임원은 정기총회에서 참석인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선출한다(제8조).’라고 변경하였다가, ③ 2013. 7. 14. 시행된 규약(이하 ‘신 규약’이라 한다)에서는 다시 ‘종중 회장은 피고의 종손으로 한다(제19조 제1항, 이하 ‘쟁점 조항’이라 한다).’라고 변경하였다. 쟁점 조항은 2022. 7. 10. 시행된 현행 규약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다) 피고의 전임 대표인 소외 1은 2020. 11. 22. 회장직을 사임하였고, 다음 날 소외 1의 아들인 소외 2가 쟁점 조항을 근거로 회장으로 취임한 후 현재까지 회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라) 원고들은, 쟁점 조항이 헌법과 법률에서 유래한 우리 사회의 전체 법질서에 반하고 종중 및 종원의 고유한 성격이나 기본적인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훼손하여 무효라면서, 소외 2가 피고의 회장이 아니라는 확인을 구하였다.
2) 원심의 판단
원심은, 신 규약이 종손에게 회장직을 부여하면서도 종손의 전횡을 방지할 수 있는 나름의 장치를 마련하고 있고, 종중의 특성이나 종손이 종중 내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지위 등에 비추어 종손을 당연직 회장으로 정한 것 자체가 종중의 본질이나 설립 목적에 위배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신 규약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쟁점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으므로 쟁점 조항을 무효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회장 지위 부존재확인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3) 대법원의 판단
가) 종중의 대표자는 종중의 규약이나 관례가 있으면 그에 따라 선임하고 그것이 없다면 종장 또는 문장이 그 종원 중 성년 이상의 사람을 소집하여 선출하며, 평소에 종중에 종장이나 문장이 선임되어 있지 아니하고 선임에 관한 규약이나 관례가 없으면 현존하는 연고항존자가 종장이나 문장이 되어 국내에 거주하고 소재가 분명한 종원에게 통지하여 종중총회를 소집하고 그 회의에서 종중 대표자를 선임하는 것이 일반 관습이다(대법원 1997. 11. 14. 선고 96다25715 판결,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09다26596 판결 참조).
나) 종중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 및 종원 상호 간의 친목 등을 목적으로 하여 구성되는 자연발생적인 종족집단으로 그 공동선조와 성과 본을 같이하는 후손은 그 의사와 관계없이 성년이 되면 당연히 그 구성원이 된다(대법원 2005. 7. 21. 선고 2002다1178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20. 4. 9. 선고 2019다216411 판결 참조). 이와 같은 종중의 성격과 법적 성질에 비추어, 종중 규약의 내용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경우 또는 종원이 가지는 고유하고 기본적인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등 종중의 본질이나 설립 목적에 크게 위배되는 경우 그 종중 규약은 무효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8. 10. 9. 선고 2005다30566 판결, 대법원 2017. 10. 26. 선고 2017다231249 판결 취지 참조).
다) 앞서 본 사실관계와 원심판결 이유 및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쟁점 조항을 유효하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
(1) 일반적으로 종손이라 함은 ‘장자계(長子系)의 남자손(男子孫)으로서 적장자손(嫡長子孫)’을 말한다. 종래 우리 관습에서 종손은 종가의 대를 잇는 사람으로서 종중을 대표하고, 제사주재자로서 분묘의 수호·관리 및 봉제사에 대한 권리를 갖는 등 종가의 권위에 비례하여 강력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유교의 전통적 의미에서 종손이 누렸던 이러한 지위는 적서차별의 철폐, 상속분의 균등 배분화, 호주제 폐지 등 민법의 제·개정에 따라 상당히 퇴색되었다. 특히 대법원 2008. 11. 20.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은 ‘상속인들 간의 협의와 무관하게 적장자가 우선적으로 제사를 승계해야 한다는 종래의 관습은 더 이상 효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적장자에게 당연히 주어지던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부인하고 공동상속인들 간의 협의로 제사주재자를 정하도록 하여 관습상 종중 내에서 종손이 차지하던 상징적 지위 역시 약화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대법원은 종중과 관련하여 위 대법원 2002다1178 전원합의체 판결을 시작으로 종원의 지위를 성년 여성으로 확대하였고, 위 대법원 2009다26596 판결에서 여성에게 대표자 선임을 위해 개최되는 종중총회의 소집권을 가지는 연고항존자의 자격을 인정하는 등 남녀평등의 원칙을 실현하고 양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변화를 이끌어왔다. 이와 같이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우리의 전체 법질서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한 가족생활을 보장하고, 가족 내의 실질적인 권리와 의무에 있어서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아니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남녀평등의 원칙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위 대법원 2002다117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2) 신 규약 제21조에 따르면, 회장은 피고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총회, 회장단회, 이사회의 의장이 되고 종중 업무를 총괄한다. 쟁점 조항은 피고의 회장 지위를 종손에게만 부여하고 있으나, 종손에 한정하여 위와 같은 지위를 부여할 만한 특별한 필요성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종중은 공동선조를 둔 후손 모두를 구성원으로 하고 공동선조의 분묘수호, 제사, 종원 상호 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점에서 종중의 의사결정, 임원 선임, 목적 사업의 수행을 위한 권리와 의무에 관하여 종원 모두에게 같은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 그 본질과 설립 목적에 부합한다. 또한 쟁점 조항은 종손이 아닌 종원이 대표자에 입후보할 수 있는 권리 및 혈통이 아닌 능력과 자질을 우선하여 대표자를 선출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하였고, 특히 여성 종원에 대하여는 출생에서 비롯되는 성별만을 이유로 대표자에 입후보할 기회조차 봉쇄하고 있다. 즉 쟁점 조항은 합리적 이유 없이 종손과 종손이 아닌 종원을 차별할 뿐만 아니라 남성 종원과 여성 종원을 차별하는 내용에 해당한다.
(3) 종중에 대하여는 자연발생적 종족집단이라는 특성상 그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종원의 의사와 관계없이 가입이 강제되므로 내부관계에 대한 사법심사에서 언제나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최근 종중에서는 종중재산을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이 사건의 배경 역시 같은 유형의 문제인바, 이러한 상황일수록 종중의 본질 및 설립 목적에 맞추어 종원의 총의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종중을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을 종중의 대표자로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표자 선출과정에서 성별을 가리지 않는 종원들의 입후보와 자유투표 및 비밀투표 보장, 대표자가 전횡을 저지를 경우 이를 견제할 감시제도의 확보, 종중 운영에 대한 종원들의 다양한 의견개진 기회 부여 및 의사반영 절차 마련 등을 통하여 실현될 수 있다. 위와 같은 과정에서 종중이 존중받아 온 독자성과 자율성의 한계를 스스로 일탈하는 경우, 법원은 종원의 고유하고 기본적인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후견적 입장에서 개입할 수 있다.
(4) 신 규약 제8조 제1호는 ‘종중 회장의 선출’을 총회의 결의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회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종손이라는 신분으로 제한하고 있는 이상, 총회의 위 결의는 종손이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한 것이고, 쟁점 조항은 총회가 회장 선출을 승인 또는 추인할 수 있는 본래적 기능을 무력화시킨다. 설령 총회에서 회장 선출 안건이 부결된다고 하더라도 종손이 아닌 종원은 회장 후보로 출마할 기회 자체가 없으므로 회장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또한 종손이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회장을 어떻게 정할지에 대한 규정이 없으므로 대표자의 부재로 인하여 피고 내부의 혼란을 야기할 위험도 있다. 피고는 종손의 회장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제1심 진행 중인 2022. 7. 10. 이사회 결의로 현행 규약을 마련하면서, 쟁점 조항 개정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를 ‘출석한 재적이사의 80% 이상 찬성’으로 강화하고 회장이 위 재적이사 중 고문 4명, 총무 1명을 선임하도록 권한을 집중시킴으로써 그 개정을 사실상 어렵게 만들기도 하였다.
(5) 결국 신 규약 중 쟁점조항의 내용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할 뿐만 아니라 피고 종원이 가지는 고유하고 기본적인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종중의 본질이나 설립 목적에 크게 위배되므로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종중 규약의 유효성 판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원고들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나. 제2 상고이유 부분
원심은, 2017. 3. 5. 개최된 이사회는 신 규약이 정하는 소집 특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개최된 것이어서 그 소집절차에 하자가 있으므로 위 이사회에서 이루어진 결의는 효력이 없다고 보아, 긴급이사회 결의를 통하여 신 규약이 개정되었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이유모순의 잘못이 없다.
2. 피고의 상고이유에 관하여
원심은, 피고가 종원들의 의결권 보장을 위한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2020. 11. 22. 자 정기총회 당일에서야 참석인원 99명을 초과하는 종원들의 입장을 불허한 행위는 종원들의 총회 출석권 및 의결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행위이고, 이는 의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절차상 하자에 해당하므로 위 정기총회에서 이루어진 매매위원회 해산 결의는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총회결의절차의 중대한 하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3.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원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며, 피고의 상고는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상환(재판장) 오경미 권영준(주심)